5월부터 계속해서 갈라디아서 말씀을 함께 나누며 묵상해 왔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야고보서를 묵상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차이점과 함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편견에 대해 잠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언뜻 보기에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는 정 반대의 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행위가 아닌, 은혜로의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썼고, 야고보는 믿음이 실재함을 입증하기 위한 행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이렇게 내용 상의 접근 방법이 다를 뿐, 실제로는 이들의 메시지는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고, 또한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만 구원이 열매맺는 것이라는 내용을 우리는 이 두 권의 서신서를 통해 보게 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세운 후 어떤 사람들은 구원에 필요한 할례와 의식에 대한 순종을 설파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원의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만을 믿는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관습을 폄하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강조하는 것들이 구원에 불필요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자랑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이복 형제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동안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요 7:3-5). 그는 부활 후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행 1:14; 고전 15:7).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실용적인 명령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야고보가 종종 언급했던 잠언처럼 그의 편지는 일상 생활, 또 연습들에 관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 혀를 제어하는 방법,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등과 같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또 그는 동료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관계와,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중요한 주제 역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라는 격려로 자신의 편지를 끝맺었습니다. 야고보서는 강하면서도 확신을 주는 글이며, 동시에 실용적인 글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의 복잡한 관계는 아마 루터의 글에서 잘 나타나지 않나 생각됩니다.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그는 갈라디아서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를 통해 자신이 교회의 행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고 노력하며 겪은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피력합니다. 반면, 야고보서를 향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같은 더 무거운 책(루터의 생각에)과 비교하여 지푸라기밖에 안되는 책이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향한 여정에서 쏟은 수고와 노력에 대한 강조로 인해 생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는 절대로 모순되는 두 권의 책이 아닙니다. 단지 이 두 서신서는 다른 관점에서 구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했고, 야고보는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하지만 삶에 눈에 띄는 증거가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경쟁자가 아닌, 진리의 복음을 위한 동반자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와, 계속되는 야고보서 묵상을 통해 더 깊이있는 복음의 진리를 맛볼 수 있는 교우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